학원복음화협의회

[간사, 정체성과 삶] 간사, 그 거룩한 부르심 앞에서…… _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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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복협 작성일18-07-05 22:08 조회3,7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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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며……
 저는 늦깎이 간사입니다. 직장 생활(방사선사)을 만 7년 하고, JDM에서 9개월 훈련 받은 뒤 뒤늦게 간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왜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간사가 되었냐고 많이 묻습니다. 저는 그 대답에, “하나님을 위해 더 가치 있고 더 위대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직장 생활은 위대한 일이 아니냐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냥 편안하고 안정된 삶과 나를 위한 삶, 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보다는 좀 더 하나님을 위해 가치 있고 위대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이 좋지 않다거나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너무 재밌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사진 동호회 회장으로 사진 봉사 활동도 하며 나름 의미 있게, 인정받으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선교사님들과 간사님들을 후원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던 저에게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뭔가 찜찜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좋고 재밌었지만, 그 생활 속에 뭔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사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 아닌가요?”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는 찬양대, 청년부 회장도 하며 잘 섬기고 살았었기에 잘못 사는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은 이유는 너를 통해 나의 영광을 얻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듣는데 뭔가 한 대 맞는 거 같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없는 것 같고 너무나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게 사는 삶 자체가 ‘나 자신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인데 저는 저의 편함과 부, 내 나름의 의로움, 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하던지요……. 늦게라도 그것을 깨달은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건 알겠는데 그럼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인가 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럼 하나님, 제가 어떻게 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겠습니까?” 이 질문을 하나님께 한참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나 쉽게 답을 주시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9년 8월 초에 JDM 세계 선교 대회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 저의 상황이 너무 답답했기에 그 수련회를 꼭 가고 싶었습니다. 그 수련회에서 이 질문의 답을 꼭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월 초는 휴가의 절정기이고 휴가를 쓰기 위해선 위에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꼭 수련회 가게 해주세요.” 그러나 아니라 다를까 선배 한 분이 먼저 그 기간에 휴가를 쓰셨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간에 어떻게든 가게 해달라고……. 그런데 어느 날, 그 선배 분이 휴가 쓴 것을 지우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지우냐고 물으니 그 기간에 하려고 했던 것이 취소가 되어서 휴가를 미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그 기간에 내가 써도 되냐고 물으니 그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 기간에  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고 수련회에 다 참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얼마나 기쁘던지요! 나의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래서 참석한 JDM 세계 선교 대회는 그야말로 안 가면 안 되는 인생 수련회였습니다. 여러 선교사님들의 주옥같은 강의, 성경 공부, QT 그 모든 것들이 정말 하나하나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나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답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계속 해오던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직장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선교사가 되기로 하나님 앞에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건, 그렇게 하나님 앞에 결단을 하고 나니 제 마음속 찜찜하던 것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속이 너무 시원하고 후련했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이거였구나’ 라는 것을.

 사실 선교사의 꿈은 대학교 때부터 있었습니다. 대학 1학년 JDM 겨울 수련회에 가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후 그 수련회에서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꿈은 무뎌지고 현실에 순응(?)하며 포기하였던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다시금 알게 해주시고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족들의 거센 반대였습니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간다고 하니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결혼도 해야 하고, 집도 사야 하고, 집안의 종손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것들을 뒤로 하고 다른 길로 간다고 하니……. 가족들은 크게 반대하고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선하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간 씨름 끝에 가족들은 결국 허락하였고 직장을 은혜롭게(?)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7년 동안의 직장 생활동안 하나님은 정말 많은 은혜를 주셨고 좋은 것들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직장 그만두고 마지막 날 동료들과 회식하고 집에 왔을 때, 2시간 정도를 울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재밌었고 좋았던 직장,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셨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다 큰 어른이 되어서 그렇게 울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2. 9개월의 JDM 훈련, 간사 결단
 직장을 그만 두고 바로 선교사로 나가기보다 우선은 제 자신이 훈련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때부터 직장 생활까지 모임을 한 JDM의 KDTI 훈련을 받기로 했습니다. KDTI 훈련은 3월부터 12월 초까지 9개월의 훈련 과정이고 JDM 최고 훈련 기간입니다. 
 JDM의 본부가 있는 춘천에서 합숙하며 새벽 기도, 영성, 성경, 신학, 전도, 리더십 등 여러 훈련을 받습니다. JDM의 간사뿐만 아니라 선교사들도 이 훈련 과정을 거쳐 간사와 선교사가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JDM 간사나 선교사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고, 기아대책을 통해 NGO 사역과 긴급 구호 사역을 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춘천 본부에서 하루하루 훈련을 받으며 생활하였고, 쉽지 않은 훈련 속에 저는 조금씩 훈련되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3월 말에 광주로 일주일 대학 전도 훈련을 갔습니다. 광주에 도착해 전남대와 조선대 등을 돌며 전도를 하였고 강의실에 들어가 클래스 미팅을 하는 등 여러 활동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초대해 복음 축제를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전도 훈련을 하며 많은 대학생들을 만나며 이야기 하는데, 그 대학생들에겐 비전이 없었습니다.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며 ‘취업이나 잘해서 잘 먹고 잘 살면 돼지’라는 생각을 하는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젊은 애들이 저렇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아, 캠퍼스에도 일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간사가 되어야지’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6월말 JDM 대학 집회에 초신자, 불신자들만 따로 하는 집회에 리더로 가게 되었습니다. 매년 대학 집회 때마다 초신자, 불신자들만 모아서 집회를 따로 하는데 거기 리더들을 KDTI 훈련생들이 맡았습니다. 거기서 5명의 불신자(?)들을 맡아 리더를 했는데, 정말 감사한 건 대부분의 지체들이 그 집회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문지에 누가 가장 집회에서 영향을 주었나 라는 질문에 ‘리더’라고 대답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캠퍼스 간사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련회를 통해 이렇게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며 일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고 가치 있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훈련 과정 중 9월에 태국 선교 훈련을 가게 되었습니다. 태국에서의 사역도 태국 대학에 들어가서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처음 가보는 선교 여행이었기에 많이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태국에 가서 한 캠퍼스에 들어가서 전도하다 몇 명의 태국 대학생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태국은 한류가 많이 있어서 그들과 친구가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방콕의 여러 곳을 다니며 여행을 하는데, 그 친구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우상들이 나타나니 무작정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해서,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운 게 우상에게 절하는 것뿐이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우상을 섬기는 그 대학생들의 모습……. 한 나라의 지성인이고 배운 사람들이라고 하는 대학생들이 우상을 섬기는 그 모습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 선교 여행을 통해 캠퍼스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결단했습니다. 해외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는 간사, 선교사가 되어야겠다고……. 그래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야겠다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캠퍼스 간사가 되어야겠다는 결단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간사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단을 합니다. 

#3. 늦깎이 간사가 되다. 그러나……
 간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많은 않았습니다. 내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JDM 선배 간사님들과 대표 목사님의 재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졸업하고 캠퍼스를 많이 떠나 있었고 나이도 많기에 여러 검증(?)들이 필요했습니다. 간사 지원을 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던 중 감사하게 간사 결정이 났고 JDM의 수습 간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 1월 수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33살의 나이에 드디어 늦깎이 수습 간사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수습 간사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수원으로 왔는데……. 
 
 발령받은 수원은 개척 지구였고 황무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개척한지는 좀 되었는데 남은 지체들은 한두 명 밖에 없고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연고가 전혀 없고 처음 살아보는 곳이었기에 도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몰라 헤매기도 하고 가는 곳마다 낯설기만 했습니다. 또 캠퍼스는 드넓고 크게만 보였습니다. 캠퍼스 간사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왔지만 그곳은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바리하였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또 돈이 없어 굶기가 일수였습니다. 간사는 예전의 직장처럼 매달 일정한 금액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후원으로 살아야 했기에 아주 적은 돈으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직장 생활과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은 굶고 캠퍼스에 들어가 전도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점심으로 삼각 김밥 하나와 작은 컵라면 하나를 사 먹었습니다. 한 끼에 2,000원을 넘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학식을 사먹고 싶어도, 학식도 최소한 2,000원 이상이었기에 적은 돈으로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전도하다가 저녁이 되면 학교 식당 끝날 때쯤에 갔습니다. 그 때 가야 학생들이 없기에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까지 1시간 반을 걸어와야 했습니다. 이런 생활들이 직장 생활할 때와 완전히 다른,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생활들이었습니다. 그 때의 아득함이란…….

 그러나 수습 간사이기에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사역을 하였습니다. 황량한 캠퍼스에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부스를 설치하고 설문지를 놓고 설문지를 받았습니다. 원래 수줍음이 많아 그런 일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따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설문지를 받고 설문한 학생들에게 문자와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돌아오는 답장과 대답은 차가운 반응과 냉랭한 답변뿐이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고단한 날들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전도하는데 정말 매섭게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거의 욕을 듣다시피 거절을 당했는데 속으로는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애써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채플이 있어 센터로 가서 찬양을 하는데, ‘부르신 곳에서’라는 찬양을 할 때였습니다. 그 찬양을 부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그 날 낮에 당했던(?) 일에 애써 스스로 위로했던 설움과 감정이 터져 나왔습니다. 스스로 ‘괜찮아’라고 했었지만 속으로 많이 힘들고 아팠나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제 마음을 아시는지 “기호야, 괜찮아. 네 마음 안단다……”라는 위로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위로와 만져주심을 느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위로는 잊을 수 없습니다.

 또 한 번은 돈이 하나도 없어 어디 갈 때만 버스 카드로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하필 그 주에 양복을 입고 어디를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양복 바지를 다리려고 바지를 꺼냈는데 주머니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꺼내 보니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왜 그 돈이 거기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언젠가 넣어 두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 순간에 발견한 만 원짜리 한 장이란…… 말로 할 수 없이 큰 돈이었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캠퍼스를 살리겠다고, 대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 주겠다고 온 캠퍼스는 막상 부딪히니 영적 전쟁터였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그렇게 수습 간사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4. 새로운 간사님과 후배 간사와 함께……
 1년의 수습 간사를 마치고 2012년이 되니 함께 사역하던 대표 간사님과 여자 선배 간사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영동 지구 대표 간사님이었던 송철용 간사님과 이제 막 수습 간사가 된 박예희 간사가 와서 함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온 대표 간사님은 전에 계시던 대표 간사님과 달리 굉장히 활달하고 재밌는 분이셨고 후배 간사도 명랑하고 긍정적이며 노래 잘하고 재밌는 간사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사역은 확실히 더 재밌고 많은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사들끼리 소그룹도 하며 많은 교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전년과는 다르게 많은 지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채플 때마다 한두 명이었던 지체들이 2012년에는 10명 이상이 모여 채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도 축제, 부활 축전, 제자 행전(무전 여행), 캐스팅 데이 등 많은 행사들을 하며 사역을 해 나갔습니다. 재정적인 상황도 교회 사역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갔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았던 상황들이 너무 다르게 바뀌기 시작했고 재밌게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 온 송철용 간사님과 박예희 간사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와 다름없었습니다.  함께 사역하는 맛(?)도 알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지체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사역이 조금씩 세워져 갔습니다. 

 
#5. 결혼, 대표 간사 대행, 새로운 사역의 시작 
 2013년 2월, 늦은 나이인 36살에 두 살 어린 대전 지구 간사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대전 지구 대표 간사님의 소개로 만나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에 첫 아이까지 낳게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혼자 사역하는 것보다 간사인 아내를 만나 사역을 하니 더 많은 도움과 조언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외롭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자매 사역을 아내가 할 수 있어서 너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하나 선하게 인도해 가셨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하다가 2015년 여름, 갑자기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지구 대표 간사님이신 송철용 간사님이 안식년을 들어가서 제가 대표 간사 대행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구에 큰 버팀목이고 지붕과 같았던 대표 간사님이 안식년을 들어가시고 안 계셔서 모든 사역을 박예희 간사와 둘이서 결정하고 해야 하는 상황. 해보지 않은 일이라  굉장한 부담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JDM 공주 지구를 탐방한 적이 있었는데 공주 지구는 학생들이 임원으로 세워져 이끌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기억이나 수원 지구도 학생 임원단을 만들고 임원들이 맡은 역할을 나누어서 일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니 뭔가 체계가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조직력이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임원으로 섬기는 지체들은 자기들이 이끌어 가는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기 시작하였고 스스로가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해나가니 간사가 하나하나 손대고 간섭하지 않아도 사역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대표 대행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막상 대표 대행으로 사역을 하다 보니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우선은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사역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았고, 지체들과 더 어울리고 팀워크를 이루며 사역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매 주 설교하는 특권(?)도 누릴 수 있었고, 더 많은 소그룹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습니다. 간사는 뭐니 뭐니 해도 지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일 감사하고 좋은 시간입니다. 또 그 해 겨울 집회에 처음으로 주제 강의를 하게 되고 많은 지체들이 말씀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6. 예희 간사의 병가, 대표 간사로 취임하다.
 그렇게 재밌게 사역하던 어느 날, 또 하나의 나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함께 사역하는 예희 간사가 다리를 다쳐 병가를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2015년을 잘 넘기고 2016년 개척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후배 간사가 병가라니……. 원래 무릎이 좋지 않아 조심하고 있는 찰나였는데 갑자기 넘어져 병원을 가니 ‘족저근막염’에, ‘모튼 증후군’이라는 병이 함께 와서 잘 걷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돌아다니거나 움직이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병가를 쓰고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제껏 잘해주시다가 왜 갑자기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 하는 원망이 밀려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시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혼자 지체들과 개척을 하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왔고, 개척이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대학 여름 수련회에 수원 지구가 29명이 참석하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은혜였습니다. 3명의 간사가 사역했던 과거에도 없는 수원 지구 역사상 최고로 많은 인원이 참석한 집회였기 때문입니다. 혼자 사역하는 어려움을 아시고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표 간사님이셨던 송철용 간사님은 2016년 8월 1일자로 간사를 그만두셨고, 그 자리에 제가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6년 8월 29일 정식으로 대표 간사로 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2011년 어리바리하고 나이 많은 늦깎이 간사가 어느덧 대표 간사로 취임하게 된 역사적이고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표 간사가 되긴 했지만, 수원 지구의 모든 사역을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6개월 정도만 병가를 쓰면 나을 줄 알았던 예 희 간사는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누군가 와줄 간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매주 채플 메시지, PRE-TTS훈련, TTS 훈련, 리더 소그룹을 해야 했고, 종교 개혁 세미나, 사경회 등 행사들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겨울 집회까지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함께 준비하는 임원들이 열심히 해 주었고 함께 일을 했기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집회. 2016년의 겨울 집회는 잊을 수 없는 겨울 집회였습니다. 임원들과 회의 하던 중 우리가 하기로 한 장소인 서울 지구 센터는 서울 신촌 한복판에 있기에 그 신촌 한복판에서 노방 전도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 해 겨울 집회 주제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 14:12)’였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겨울 집회가 시작되었고 막상 노방 전도를 하는 당일, 그 날은 그 해 겨울 중 최고로 추운 날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촌 한복판에서 노방 찬양을 하였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지나가던 크리스천 분들이 이렇게 추운 날 담대하게 노방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은혜 받았다고 간식을 섬겨 주기도 하고 함께 박수도 쳐 주며 격려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날은 너무 추웠지만 우리 속에 있는 열정과 용기로 노방 찬양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노방 찬양뿐만 아니라 집회가 너무 큰 은혜 속에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은혜를 주시고 하나하나 이루어 가셨습니다.    

#7. 외로운 사역, 하나님의 채우심
 처음 3명이었던 간사가 어느 순간 1명이 되었고,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수원이라는 지역이 작은 도시가 아니기에 사실 혼자 감당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정적으론 굉장히 힘든 날들을 보냈습니다. 가장으로서 아이 둘과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데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계속 쓰다 보니 카드비가 밀려 사역비가 들어오면 바로 카드비로 나가고 또 다시 카드를 쓰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위해 쓴 돈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쓴 돈들입니다. 그러니 제 카드비 좀 해결해 주세요.” 어쩌면 말도 안 되는 기도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2017년 2월, 건강 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결과가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지방간에 간수치도 높고, 당뇨 초기, 동맥경화 초기, 고혈압, 대장에 용종 등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우선 체중을 줄여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뛰는 것을 좋아해서 집 앞에 있는 수원대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뛸 땐 5바퀴, 6바퀴 돌다가 나중엔 15바퀴까지 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운동을 하고 어느 날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무릎은 원래 좀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오른쪽 무릎까지 아파지지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가서 MRI를 찍어보니 왼쪽 무릎은 염증이 심하고, 오른쪽도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성인이 되면 무릎 조직의 주름들이 없어져야 하는데 나는 그것이 남아 있어서 그것 때문에 더 아프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혼자 사역해서 바쁘고 할 일이 많은데 수술이라니……. 그래서 결국 5월 16일 무릎 수술을 받았습니다. 무릎 수술을 하고 나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를 위해 든 보험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내가 수술한 병이 그 보험의 수술 진단 자금에 딱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금이 생각보다 굉장히 큰 액수였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내가 압박받고 있는 그 카드비를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고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정말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이렇게도 응답하시는구나…….’ 말도 안 되는 기도였고 불평어린 기도였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날 위해 베풀어 주신 큰 이벤트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카드비를 해결하게 되었고 재정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무릎 수술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잘 치료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저의 마음도 잘 아십니다.  

#8. 글을 마치며
 어느덧 직장을 그만두고 간사를 시작한지 7년이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두려움 가득했던 첫 수습 시절을 지나 지금까지 오기까지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적기엔 지면이 너무나 짧습니다. 여기에 적진 못했지만, 사역하며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때론 힘들고 어렵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으며 힘겨웠지만,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게 선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뛰어 다녔던 순간들……. 그 시간들이 제겐 제 삶의 진주 같은 시간들입니다. 또 예수님을 잘 모르고 하나님도 잘 모르며, 자기가 누군지, 자기 꿈이 무엇인지,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체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이 간사의 삶이 너무 귀하고 감사합니다. 부족한 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들이 복음으로 인해 더 가치 있고 멋진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여전히 혼자여서 할 일 많고 또 버겁고 힘겹긴 하지만, 이 모든 상황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혼자이기에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간사 하면서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 속에서 여전히 함께 하시고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끝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늦깎이 간사를 불러 주시고 사용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이기호(JDM 수원 지구 대표 간사)

 

(* 제 1회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 전국 대회 공모전 '간사, 정체성과 삶'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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