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복음화협의회

[포럼 재방송]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무례한 기독교, 그리고 캠퍼스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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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0-11-27 00:00 조회9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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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사회 속의 진정성 있는 기독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만, 이슈 파이팅은 타이밍이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기 때문에 약간은 조급하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급조한 포럼인데도 주말 저녁 off-line에 모여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우리 주님의 샬롬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다원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다원화는 불가피합니다. 더 이상 다원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 사회는 불가불 개성(個性)을 중시하며, 이를 위해 다양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현대인들은 동질화보다는 차별화에서 자신의 identity를 찾으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다원화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양식은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복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상수인데, 다원화한 사회는 가능하면 어떤 상수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포용과 아량을 무엇보다 가치롭게 여기는 다원주의로 흘러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원화 사회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이런 긴장관계를 유념하면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복음과 문화의 측면에서 이 긴장관계를 이해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인간의 본질적인 의미나 가치는 수시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외로움을 타며, 사랑받기를 원하며, 진실하고 성실한 것을 좋아합니다. 다원화하고 다양해진 것은 본질이 아니라, 그 본질에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하는 문화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때로 어떤 한 문화의 틀만을 고집하여 다양성을 전혀 용인하지 않거나, 반대로 문화가 본질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킬 정도가 되면 긴장이 생겨납니다. 한 마디로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여,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거나, 틀린 것을 다르다고 하게 되면 긴장이 점점 고조하게 됩니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게 되면 불필요한 갈등이 야기하게 됩니다. 반대로 틀린 것을 다르다고 하는 경우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서 여러 가지 병리현상이 유발하기 시작합니다.
 
둘째는 사랑과 진리의 측면에서 이 긴장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과 진리는 제자도의 두 축입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늘 긴장이 존재합니다. 때로 사랑을 앞세우다 보면 진리가 위축되고, 반대로 진리를 앞세우다 보면 사랑이 위축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이름으로 진리를 타협해 버리게 되면 기준이나 증거가 흐리멍덩해져서 결국은 혼란과 파괴를 초래하게 됩니다. 반대로 진리의 이름으로 사랑을 질식시키게 되면 무례하게 되어서, 결국 진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즉, 이 긴장관계의 줄타기에서 실패하면 우리는 무례하게 되던지, 아니면 무기력하게 됩니다. 무례해서는 안되겠지만, 진리의 debate가 없이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우리는 진리를 가지고 debate할 만큼은 도리어 진정성있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포럼이 복음의 본질과 문화적인 옷, 그리고 사랑과 진리 사이의 긴장을 의미있게 구분해 보고 분별해 보는 창조적인 토론의 한 마당이 되면 좋겠습니다.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권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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