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복음화협의회

[이단 경험 사례] 신천지 탈퇴와 구출의 대가, 그것은 _ 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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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복협 작성일17-07-25 19:25 조회7,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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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 5일, 인천에서 신천지를 탈퇴한 청년을 신천지 청년 3명이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집단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영훈(가명) 청년을 폭행하던 신천지 청년은 놀란 이웃들에게 여동생 성폭행범을 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3명은 이영훈 청년을 강제로 차에 태우려고도 했습니다. 사건 이후 신천지 유관 언론인 <천지일보>에서는 이영훈 청년이 빙판에 넘어져 다친 것이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오랜 법적 싸움 끝에 신천지 청년 3명은 유죄가 확정되었고, <천지일보>는 기사를 정정했습니다. 아래는 이영훈 청년이 보내온 글입니다.



 능이 끝나 학교 다니는 게 가장 즐거웠던 2011년 11월 어느 날, 3학년은 점심 시간이 되면 바로 집을 가도 되었고 여느 때와 같이 학교 정문에는 학원 전단지며 여러 홍보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이 다니던 친구 녀석과 귀찮아서 그런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게 익숙해져있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옆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제 팔을 홱 잡고 잠깐이면 된다며 불러 세웠습니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위로 두세 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 누나는, 자기가 I 대학교 학생이며 멘토로서 이제 졸업하는 고3 을 대상으로 대학교 상관없이 멘티를 구하러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변에 형 누나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 또한 같은 대학교 학생 이라며(물론 다 거짓말이지만) 똑같이 제 친구들을 붙잡아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대학생이 될 거란 생각과 대학생이 되기 전에 대학생 형 누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제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었고, 집에 가자마자 연락이 왔습니다. 하루 이틀 연락을 하며 많은 친구들이 놀러오고 있다고, 같이 와서 놀다 가라며 저를 불렀고, 다들 좋은 사람처럼 보여서 동아리방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20~25평 정도 돼 보이는 큰 방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이 앉기 힘들 정도로 꽉 차있었습니다. 선배라고 부르는 형 누나들과 제 또래 친구들이 10명 남짓 짝을 지어가며 게임을 하고, 간식도 주고 친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학교 친구들과 여고에서 온 듯한 친구들, 또 다른 고등학교에서 온 친구들도 다 같이 재미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느 정도 이름도 알고 친해졌을 무렵 저희는 단체로 I 대학으로 산책도 다녀오고, 번호도 교환하며 그렇게 신천지라는 이름 없이도 신천지 사람들이 제 전부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이 끝나고 몇 번의 만남을 동아리방에서 더 가졌습니다. 선배 한 명당 고등학생 몇 명을 맡아서 연락을 계속 주고받았고, 2011년이 끝나기 전 I 대학교 학생회관에 있는 어느 작은 강당에서 소개해줄 분이 있다며 모두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때 모인 약 100명이 속는 줄도 모르고 동아리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라며 간사님이라고 불리는 4명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분들은 다음 모임 때부터 자주 볼 수 있었고, 2011년이 끝날 때 즈음에는 늘봄이라는 동아리 명칭을 쓰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나눠서 활동하였습니다. 그중에는 POP, 운동, 기타, 신앙 등의 파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으며, 저는 평소에 교회를 다녔기에 신앙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서 신앙을 택했습니다. 신앙에 대해 간사들이 가르쳤고, 제가 교육을 잘 받고 있는지 선배들이 감시역을 맡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2012년도의 시작을 신천지 사람들과 하게 되었고, 틈만 나면 선배들과 만나서 놀며 하루의 절반 이상을 선배들과 있었습니다. 헤어지는 게 너무나 아쉬웠고, 선배들과 가장 친한 후배가 되고 싶어 우리끼리 경쟁 아닌 경쟁도 많이 했습니다.
늘봄이라는 동아리에는 Date Time, 줄여 DT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보통 선배와 후배가 1:1로 만나서 진지한 얘기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주로 남녀가 만납니다). 그 시간으로 이 사람들에게 제 전부를 보여주고, 이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는 착각이 들었으며, 평생을 이 사람들과 보낼 줄 알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정말 좋은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잘 이용했고 감성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아있던 학생의 수는 약 60명 정도였습니다. 중간에 신천지라는 말이 한번 돌아서 인원이 줄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신천지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고, 이단과 사이비 종교라는 개념과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거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에 듣고도 몰라서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친구가 “거기 신천지야!”라고 했을 때도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넘어가버렸고, 옆에 있던 선배에게 “친구가 거기 뭐 신천지 뭐라고 한다.”라고 얘기했을 때에도 선배들은 정말 너무한다면서 그런 것 아니라고 눈물로 부정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영어 공부를 하러 간다’, ‘I 대학교 연합 동아리 간다’고 했습니다. 이상하다며 가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좋은 사람들이라고 반박하며 꿋꿋이 신천지에 다녔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파트는 신앙 하나만을 배울 수 있도록 통합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전혀 몰랐던 저였습니다. 그곳에서 신앙을 배우면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를 해주실 때도 ‘아! 저게 저거구나, 그래서 이런 의미구나’라며 성경을 좀 더 알아간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6월의 어느 날 대학생으로서 첫 학기가 끝나 방학이 왔을 때 남아있는 사람 약 50명과 함께 인천대공원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헤어지기 전에 처음으로 자신들이 신천지라고 밝혔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 너희들과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들을 이해해달라고, 그러고는 신천지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모르는 체하고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제 세상의 전부였던 이 사람들이 모두를 속여 왔다는 것과,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 이제 와서 선택하라는 것, 또한 이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를 잃는다는 그 모든 것에 화가 치밀었고,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되더라도 똑같이 되갚아 주겠다고, 그곳에 남아서 우리들을 속여 신천지로 끌어들였던 것처럼 한 사람이라도 신천지에서 빼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목사님에게 가서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했습니다. 마침 제가 조금 수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목사님은 이미 이단상담학에 관심을 갖고 계셨던지라, 저에게 이단 상담소를 소개해주며 함께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가서 누군가를 “빼내고 싶다”라는 저의 말에 모두 반대를 하며,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고 불가능할거라고 했지만 유일하게 목사님만이 저를 믿는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3달 넘도록 신천지에 다니면서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해가며 마치 그곳에 동화된 듯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유월’을 하기 위해 시험을 만점에 가깝게 통과하며 제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그때가 한창 신천지 운동회가 있던 해였습니다. 그 당시 이만희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어찌나 이곳에 있는 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는지…….

 그래서 결착을 짓기로 했습니다. 상담소에서 알게 된 사람 중에 신천지에 더 오래 계셨지만 탈퇴한 분들과 함께, 저를 관리하던 사람을 탈퇴시키려고 만나서 얘기를 했지만 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저를 관리하던 사람은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그 사람의 어머니를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저를 관리하던 사람이었기에 옆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그 사람의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와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요일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에 찾아가서 그 사람의 어머니를 뵙고, 예배가 끝난 후에 연락을 했습니다. “자녀 분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비밀리에 만나 자녀분이 신천지라는 것과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고 신천지에서 탈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상담소 근처에 원룸을 잡아놓고, 어머님께서 개인 택시를 운영하던 이웃께 부탁해서 그 사람을 거의 끌고 가듯이 원룸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2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말도 하지 않으면서 싸우기를 2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한 번만 들어보고 아닌 듯하면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밥을 먹고 상담소에 찾아갔습니다. 처음 상담소에 가서 아주 많은 질문을 했고 다음날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간 상담을 받고 완전히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저와 같이 정통 교리를 배우며 천천히 신앙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시 신천지에서 새로 전도하고 있다는 고등학생들에게 전화로 그곳이 신천지라고 알리며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속으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천지 교회에 더 이상 나가지 않은 이후로 연락 한 번 안 오던 간사님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두세 번 왔었습니다. 더 이상 얽히기 싫었기에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었을까요?

 이틀 정도 지나 진눈깨비가 오던 날 밤(2013년 2월 5일) 11시 40분쯤. 모퉁이만 돌면 바로 집이었는데 뒤에서 차문이 크게 닫히는 소리와 빠른 걸음으로 제게 오는 소리가 들렸고, 뒤돌아보는 순간 머리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세 명의 사람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신천지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시끄럽다며 입에 손가락을 욱여넣기도 했고, 그중에는 저를 가장 잘 챙겨주고 관리해주던 ㅈ 교회에서 보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모진 욕설과 조용히 따라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그 사라진 사람이 어디 있냐고 물었고, 중간에는 휴대폰도 빼앗아 갔습니다. 한 30여 분을 맞으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이웃이 경찰서와 소방서에 신고를 해주었기에 겨우 버티고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제 가족들과 신천지 사람들 간의 거친 말싸움이 오갔습니다.

 치료가 끝나자마자 지구 방위대를 들렀다가 경찰서로 갔습니다. I 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걸로 알고 있는 피의자 중 한 명은 팔에 기브스를 하고 나타나 자기들이 맞았다면서 오히려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6시간 밤을 지새우고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초등 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씻고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온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었고 살아있다는 것에 눈물이 났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소식을 듣고 잠들기 전에 바로 찾아와주셨고, 아는 기자님을 소개해주시면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재판으로 심판받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상담소로부터 변호사님을 소개받아 재판을 진행할 수 있었고, 처음 관심 갖고 찾아와주신 기자님으로부터 여러 언론 사람들을 소개받아 <천지일보>와 대응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이 모든 일을 도맡아 재판에서 이길 수 있도록 발벗고 뛰어주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총신대학교에서 반년 간 청강도 하고 기도와 믿음으로 회복하고 있지만, 그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 여전히 괴롭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영훈(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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