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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특집 3] 연애를 시작한 아들에게 _ 권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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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복협 작성일16-05-18 13:06 조회1,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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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시여, 제게 애인을 주소서!' 당시 중학생에 비해서 조숙했던 너희 큰 아빠 일기장의 한 대목이다. 그 때 나는 국민학생이었지만, 그 일기장을 훔쳐 보면서 나도 몰래 얼굴이 상기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50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생각할수록 그 '기도'야말로 아마도 아담이 하나님을 향해 드렸던 맨 처음 기도가 아니었겠나 싶다. 사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아담의 이 일성을 들으시면서, '얏, 성공이다!'라고 외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의 이런 절박한 공허감, 그리고 결핍감이야말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한 짝을 이루고 있는 연합체로 지음받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지!

 해서 이제 데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는 네 얘기를 듣는 순간 아빠의 일성 역시 '얏, 성공이다' 하시는 하나님의 자축 멘트를 흉내내어서라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구나.

 벌써 30년도 더 되었구나! 네 엄마랑 밀당하던 데이트가 소강 상태로 빠졌던 어느 시점에선가 아빠는 정식으로 다시 교제를 제안하였고(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가 데이트 단계에서 연인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기였던 것 같다), 3일 만에 엄마에게서 응답이 왔다. 기꺼이 내 신청을 받아들이겠다며 환하게 웃어 주던 네 엄마의 표정과, 그 '고백'을 듣고 쿵쾅거리던 내 마음의 벅찬 흥분이 정말 엊그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단다. 그야말로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린다 해도 아빠는 두려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방 출장을 갈 때의 기억이 또한 떠오르는구나. 환갑은 훨씬 더 되어 보이는 옆 좌석의 어르신의 대답 역시 대동소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 한 세상 사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셨어요?', '장가들던 날 밤'이었지! 세대는 달라도 인간이 지닌 실존적인 속성은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세상 사는 과정이 천차만별로 다양하겠지만,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길이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마 백이면 백 이런 특별한 '만남'을 꼽지 않겠느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치고 어느 것 하나 우연이 있겠느냐만, 일생 나의 동반자, 곧 나의 다른 반쪽인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인생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성취이자 보람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사나이가 그까짓 여자 하나 때문에 울고불고 하느냐"라는 무지한 말이 아직도 더러 회자하는 줄 안다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의미와 보람을 놓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가부장적인 마초 흉내를 내느라 속마음과는 정반대의 얘기를 하는 것일게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 식의 가부장적인 허세는 많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만, 문제는 모든 것을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교환경제 시대의 천박한 논리가 모든 것을 다 잠식하는 바람에 연애나 결혼마저도 교환가치로 환산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구나. 심지어 스펙 좋은 청년들은 그럴 듯한 (클래스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교회마저도 옮겨 다니는 웃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말이다.

 물론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고, 결혼하여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을 결정하는 일은 당연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며, 사실 신중하면 할수록 더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기준이 그저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조건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의 여부로만 판단하고 있는 세태는 사실 전혀 낭만적이지도 고상하지도 않은 상거래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천박함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조건을 따지면서 계산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를 하는 것이 도대체 뭐 그리 흥분할 일이며, 또 뭐 그리 심쿵할 일이란 말이냐? (차라리 조건을 따지려거든, 입장을 바꾸어서 나는 정말 저 사람에게 괜찮은 사람일지 도리어 자문해 보도록 하여라.)

 사실, 연애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더냐? 이러 저러한 외적 내지 내적 조건들 때문이 아니라, 그야말로 그 사람의 존재 자체 내지 인격 전체가 나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이기에, 어떤 의미에서 왠지 그냥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줄 수 있고, 그 어떤 귀중한 것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으며, 결코 떨어지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 해서 결국 나의 존재와 하나로 연결되는 결혼/결합으로 귀결될 바로 그런 만남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그토록 흥분하여 뛰놀고 심지어 죽을 것 같은 안타까움으로 연연하기도 하며,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애절함을 자아내는 게 아니겠느냐?

 총각시절 아빠는 일면 이상주의자였던 것 같다. 큰 아빠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던 '대가'였던지, 하나님께서 내게 (짝 지어) 주시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든지 목숨 다 바쳐서 일생 사랑하고 아끼겠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엄마가 이 얘길 듣는다면 피식 웃으시겠지만, 예수님을 만난 지 얼마되지 않은 당시로서는 나름 심각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결국 아빠도 내 마음이 끌리는 상대를 선택하고 데이트를 신청한 셈이지만 그 원리는 지금도 그리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한 만큼 더더욱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연애를 하고 또 연정이 무르익어서 결혼 관계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은 불가불 배타적일 수밖에 없으나, 어떤 의미에서 배우자는 다른 모든 이웃을 상징하는 대표성을 지니는 대상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당시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보았던 것 같다: '나는 비록 이 한 사람을 아무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지만, 이 사람을 사랑하는 가운데 참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며, 그리하여 그 사랑(의 실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결혼의 궁극적인 의미가 아닐까?'

 어쨌든 내 얘기의 요지는 이것이다. 사랑이란 사실 조건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더 강력해지는 법이다.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중간에 실망하거나 포기할 이유도 없을 것이며, 초심을 잃을 우려나 위험부담도 그만큼 필요 없게 된다. 사실 데이트를 하고 장차 결혼을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이런 사람, 곧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고자 함이 아니더냐? 일생 동안 이것 저것 조건을 걸어두고 그 조건들을 지키는지 감시하고, 못지키면 수치와 상처를 안겨주는 그런 만남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결혼 조건이 많고 까다로울수록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로 귀결된다고 하는 통계수치는 이런 점에서 일맥상통한 진리를 드러내 준다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조건이 없이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또 더 어렵다는 데에 있다. 만일 사랑이 이처럼 무겁고 심각하고 어려운 것이라면 어떻게 쉽게 눈이 맞을 것이며, 또 데이트를 할 엄두를 내겠느냐? 그래서 사람마다 다 제 눈의 안경이라고 서로 좋아하여 '눈을 맞추는' 대상이 각각 따로 있게 마련이다. 우리 말 속담에 '고무신도 다 짝이 있다' 했듯이, 각각의 퍼즐은 얼른 보면 다 비슷해 보여도 아귀가 맞는 짝이 따로 있지 않느냐?

 데이트는 바로 이런 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제 데이트 단계에 들어섰으니 너희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이런 퍼즐의 아귀를 맞추어 보기 위하여, 서로를 잘 관찰하고, 파악하고, 때로는 평소와는 다른 각도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또 알아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보아라. 물론 이런 과정을 '재미'를 곁들여서 해야겠지.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기분좋게 그리고 재미나게 할 때에 자유해지고 창의적이 되는 법이며, 그 때에 비로소 자기를 있는 그대로 열어보이게 된다고 본다. 이런 자유함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불필요한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부터 제거하거나 갈등 요인을 없앨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면 데이트 시간과 공간을 찾는 일에 너무 에너지를 많이 쓰거나 고민하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도록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해 두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만나서 어떤 활동이나 프로그램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서로 원하는 것을 미리 취합해 두고, 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주도하거나 아니면 번갈아 가면서 이끌어가면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설거지부터 해 놓고 요리를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이런 '데이트 단계(going-out)'를 순조롭게 지나가노라면 이제 드디어 '애인 단계(going-steady)'로 과연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할 때가 올 것이다. (이제 데이트 하는 상대가 아니라 드디어 애인이 되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때로는 퍼즐 조각의 형태나 색깔 또는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해도 서로 맞는 조각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퍼즐도 있지만, 어떤 때는 서로 맞대어보기 전에는 확실히 맞는 짝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퍼즐도 있다. 말하자면, 데이트 단계가 전자와 같이 서로를 관찰하고 파악하는 단계라면, 애인 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후자의 경우처럼 더욱 지근 거리에서 서로 정말 잘 들어맞는지를 확정하기 위한 단계로 이해하면 되겠다.

 데이트 단계에서 유념해야할 원리가 있다면, 모든 인간 관계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두 사람 사이가 일대일의 대등한 관계가 유지되도록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의존하거나 반대로 지배/소유하는 구조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한 쪽은 늘 수혜자가 되고 다른 쪽은 늘 시혜자가 되는 '불공정한' 구조로 고착되어선 안된다. 시시콜콜 조건을 따져서 서로의 수준을 맞추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서로 일대일 관계에 위협이 될 정도라면 건강한 우정/애정이 자라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피차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가치관이나 성장 배경이 확연히 차이가 지는 사람들끼리 일대일의 쌍방적(inter-dependent)인 관계를 형성하려면 그만큼 넘어야 할 장벽이 높게 마련인데, 그 장벽을 넘는 데에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쓰고 나면, 어느새 '낭만'과 애정은 고사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데이트로 대변되는 이성교제란, 남녀 간의 관계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그 본질적인 속성은 사실상 동성간의 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서로를 더 알아가고, 또 아는 만큼 서로를 더 이해해 주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 받거나 연약함을 보완해 주어서 서로를 더 성숙해 가도록 돕고 격려해 주고, 때로는 건전한 비판을 통해 교정해주기도 하는 관계, 이것이 바로 아가페 사랑이 아니더냐?! 

어느 정도 우정이 쌓이면서 친근해지기 시작하면, 혹 피차 경계선을 침범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서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닫히기도 할텐데, 이 역시 우정 관계에서 이미 겪었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랑과 진리라는 두 원리 사이의 균형을 맞추면서 서로 소통하되, 필요하면 견책(譴責)하기도 하고 용서/용납하기도 하면서 관계를 회복해 나간다면 비온 후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우정이 더욱 다져질 것이다. 너무 두려워하거나 지나치게 조심하지도 말고, 너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서로 나타내 보이고 서로 알아가는 사귐과 교제의 기회가 되고, 또 즐겁고 유쾌한 여정이 되도록 해 보아라.

 한 가지 한번 더 강조하고 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애인 단계로 접어들 것을 고려하는 전환기가 되면, 데이트를 신청하던 시점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의 헌신을 각오하여야 한다. 즉, 이제부터는 특별한 장애물을 만나지 않는 이상 서로의 장래를 함께 할 것을 어느 정도는 내다보면서 헌신을 약속하는 단계로 진입해야 하므로 더욱 신중한 평가와 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빠 생각으로는, 이 지점이야말로 연애의 전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기라고 생각되며, 결혼 여부는 대부분 이 전환기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시간적으로도, 적어도 데이트 단계에서 두 사람 사이의 '다름'의 격차가 확연히 느껴져서 뒷걸음질 치게 되었던 경험이나, 아니면 경계선을 침범한 일로 심하게 상처를 주고 받는 경험을 겪어볼 정도로 충분한 교제 기간을 보낸 다음에 (물론 그런 차이를 극복하고, 또 상처를 회복한 경험을 포함하여) 애인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너희 두 사람의 생각과 평가만으로 결정하기보다는 너희를 잘 알고 아끼는 주변의 친구들 혹은 인생의 선배 내지 신앙의 선배들의 객관적인 평가 내지 조언을 반드시 참조하여 결정하였으면 한다. 혹 아빠나 엄마의 의견이나 조언을 물어온다면 이는 더없이 큰 영광이며, 불가불 팔이 안으로 굽긴 하겠지만, 가능한 대로 객관적으로 너희를 도울 수 있도록 약속하마.

 

 하여간 다시 한번 축하하며, 인류 최초의 세레나데가 네 입술의 고백으로도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축복한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로다'(창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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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석(전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회복에 대한 예후가 불확실한  땅에서 어느새 6학년에 들어섰지만복음의 은혜와  핵심가치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가 되어, 명멸하는  땅의 교회를 정화하고어둠에 잠긴  겨레에 희망의 새벽을 깨우는 것을 보고픈 열망은 여적 잠재울 수 없어서 때늦은 홍역을 치르는 아이처럼 조급한 마음만 더욱 다그치고 있는 중"

youngseokwo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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