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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 위안부, 사죄와 용서 _ 류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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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복협 작성일16-01-12 11:00 조회8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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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의 일이다. 서독의 수상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동구권 국가들과 서독과의 관계 개선책의 일환으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이 때 바르샤바에 세워진 나치 희생자 추념비 앞에서 헌화를 하던 브란트는 갑자기 무릎을 꿇는다. 그는 추념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희생자들을 위해 오랫동안 묵념했다.

한 나라의 총리가 자신이 대표하는 국가의 역사적 과오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기념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럽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브란트가 무릎을 꿇던 순간 브란트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브란트의 이 행동은 과거 독일과의 영토 분쟁, 2차 대전 시기 나치에게 입은 피해 등으로 깊은 반독감정을 갖고 있던 폴란드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자신이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였던 폴란드 수상 치란키에비치(Cyrankiewicz)는 브란트에게 ‘용서한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말을 건넸고, '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는데도 꿇지 않는 독일국민들을 대신하여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는 그가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 같은 여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브란트의 행동에 대해 찬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독일이 2년 후에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행한 '정치적인' 행위라는 비판이 있었다. 브란트는 국가의 자존심을 버렸다는 독일 내 보수 우파의 비판 또한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브란트의 ‘과감한’ 행동은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사죄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강렬한 상징으로 오랫동안 남았다.

새삼 브란트를 떠올리는 것은 연말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 최대의 이슈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 때문이다. 일본이 100억 원의 돈을 출연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한국은 현재 주일대사관 앞에 세워진 이른바 ‘소녀상’을 철거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이 문제를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합의’의 내용도 문제지만 이 ‘합의’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 할머니들과 아무런 협의와 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너무 오랜 시간을 끌어온 면도 있다. 이미 80~90세의 고령인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던 1965년을 전후한 시간이 이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2014년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이미 오래 전에 그런 골든타임은 놓쳐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쨌든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어야 했지만, 이번 협상은 그 동안 가장 고통받아온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시야에서 배제함으로써 피해자들도, 시민사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필요 이상의 반일감정은 당연히 경계해야 하고, 이 문제에 국가 폭력의 측면과 동시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점, 위안부 모집에서 조선인 협력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등 단순히 친일과 반일의 구도로 읽을 수 없는 또 다른 내러티브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겠다. 그만큼 이 문제는 복잡하고 풀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를 단순히 '맹목적 반일감정'으로만 읽을 수 있을까? 이 정도면 일본도 최선을 다했으니 우리도 이제 이 문제를 끝내는 것이 ‘성숙한’ 태도인 것일까? 피해자들이 원하지 않는 방식의 ‘사죄’를 받아놓고 이제 ‘용서’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조금만 더 일찍,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식민지배의 역사적 책임 전반에 관한 좀 더 명확한 형태의 사죄를 표명했다면 어땠을까? 빌리 브란트가 보여준 것 같은 상징적인 사과가 있었더라면 지금 한국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정도의 사과를 생각하는 건 너무 선정적일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은 우리를 때로는 용서하고, 때로는 사죄하는 존재로 부르셨다. 올바른 사죄와 용서가 오갈 때, 비록 지난 슬픔의 상흔이 완전히는 지워지지 않더라도, 관계가 회복되는 기초가 세워진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몇 푼의 돈이 아니라, 과거의 일에 대한 진심어린 통회와 사죄다. 정부가 이미 저질러 버린 일 앞에서 과연 진솔한 사죄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긍휼의 하나님께서 남아 있는 할머니들의 찢겨진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개입하여 주시기를 기도해 볼 따름이다.

 

류기현(서울대 국사학과 박사 과정)

"대학 시절 선교단체에서 보낸 시간을 인생의 가장 따뜻한 기억 중 하나로 갖고 있다. 졸업 이후 심드렁한 신앙인이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사를 공부 중이다."

rkh072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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