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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 기고문] 광장에 서다 _ 고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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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복협 작성일16-12-13 10:56 조회1,2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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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오후, 제법 익숙하게 물건을 챙기고 길을 나선다. 가방 안에는 간이방석과 따뜻한 물, 간식거리, 카메라, 양초 등……. 두툼한 점퍼 주머니 안에는 핫팩도 빼놓지 않는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는 유독 나처럼 두툼한 점퍼와 가방을 둘러 맨 사람들이 눈에 띈다. 광화문역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이들은 더욱 많아진다. 광화문 근처 지하철 출구에 끝도 없이 쏟아지는 사람들 속에서 여전히 나는 익숙하지 않은, 격앙된 감정에 휩싸인다.


(사진 제공: 고종구)
 
 지난 10월 말, 뉴스에서 보도되는 기사를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혹스러움은 연이어 쏟아지는 기사들로 인해 더욱 부풀어갔고,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나 혼자 괜한 오지랖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마저 들던 즈음, 기도회에 참여하러 온 청년들로부터 "이번엔 꼭 광장에 나가봐야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약간의 용기를 얻긴 했으나, 광장에 나가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래, 내 몫까지 열심히 하고 와"라고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토요일, 나름대로 바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하철 입구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청년들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뜻을 품고 무작정 광장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10월 29일, 낯선 광장에 처음으로 섰다. 출근길 지하철을 방불케 하는 인파 속에서 나는 비슷한 심정으로 무작정 광장에 찾아온 시민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스스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위로와 격려를 느낄 수 있었다.
 이튿날, 설교 본문은 이사야 6장이었다. 그리고 목사님은 성도들 앞에서 로잔언약의 다섯 번째 꼭지인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꼼꼼하게 읽어주셨다. '과연 잘한 일일까?'라는 의문과 '외면해선 안 돼!'라는 갈등 속에서 고민하던 내게 "불의가 있는 곳 어디에서든지 이것을 고발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이 가슴에 세차게 부딪혀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웅크리고 있었던 내게 고맙게도 청년들이 먼저 다가와 주었다. 그리고 몇몇은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조용히 비치기도 했다. 그 중 한 명과 설거지를 하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넌 왜 광장에 나가고 싶니?"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언젠간 저도 부모가 될 텐데, 제 아이들에게 이 시간을 결코 수치스러웠던 기억으로만 가르치고 싶진 않거든요."
 자신에게 되뇌는 듯, 차분하지만 분명한 대답이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11월 12일, 서른 명 남짓 되는 작은 교회에서 열 명의 청년들이 광장에 모였다. 함께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아 호일로 싼 김밥을 뜯어먹었다. 여기저기 세워진 개성 가득한 깃발들을 훑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어깨를 마주하면서도 불평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구호를 외치자는 말이 들릴 때마다 피켓을 힘껏 들었다. 광장 너머에 있는 청와대까지 닿지 않을 줄 알면서도, 매번 꼭 닿을 것처럼 목청에 힘을 주었다.

 

(사진 제공: 고종구)

 지난 주까지 도합 여섯 번을 광장에 섰다. 연일 추워지는 온도만큼 광장에 나가기 위한 채비도 늘어간다. 여전히 뉴스에서 보도되는 기사들은 어둡고, 나 하나 나간다 해서 세상이 쉬이 바뀔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채비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광장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교회 안의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살아왔던 편협한 신앙에 대한 속죄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한줄기 빛이 더욱 간절하듯이, 불의의 한복판에서 공의를 향한 갈증이 간절해졌으면 좋겠다. 감히 바라기는 정교유착으로 왜곡된 기독교의 본질이 거친 땀방울로 가득한 삶의 현장에서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었던 예수의 얼을 통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짐 월리스의 "하나님의 정치" 한 부분을 인용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 주제가 우리 교회들 안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말씀을 전하는 곳마다 이 상처투성이 성경책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성경책을 높이 쳐들고 미국의 청중에게 말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구멍이 가득한 이 책이 우리 미국의 성경책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성경책과 가위를 들고 이런 편집 작업을 해봐야 한다. 읽고도 무시하는 구절들을 모조리 오려 내보라."
- Jim Wallis 저, 『하나님의 정치 God’s Politics』, 정성묵 역, 청림출판, pp. 277-279.



고종구(아름마을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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